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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7: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유다는 예수님을 팔고 어떻게 처리되는지 관심을 가졌다. 예수님이 정죄됨을 그가 보았을 때 후회가 밀려왔다. 자기 생각이 잘못되었을 깨달은 것이다. 유다는 스승이 자기가 생각하는 길과 다른 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승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는지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신성 모독죄를 선고받는다. 인간 예수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빌라도가 사형 선고를 내려주길 기대하며 예수님을 넘긴다.

자기 잘못을 깨닫고 난 후가 더 중요하다. 유다는 자기 행동을 뉘우치고 몸값으로 받은 은 30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주며 말을 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했다.” 물러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받아주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고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응답했다.

종교 지도자들은 잘못이 있고, 죄를 감당해야 한다면 당신 스스로 감당하라고 응답한 것이다. 매정한 사람들이다. 그 어떤 사람들보다 사랑으로 이웃을 보듬고 섬겨야 할 사람들이다. 자비와 긍휼이 그들의 성품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정작 긍휼히 여겨야 할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 한 사람의 후회와 회개를 받아주지 않는다. 십자가의 길과 정반대 인간의 길, 잘못된 길을 걷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이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일들이 있다. 후회 없는 삶을 살면 좋겠지만 때로 후회가 남는 일들이 있다. 문제는 잘못을 깨달은 후가 중요하다. 유다처럼 되돌리고 싶지만,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을 때를 조심해야 한다. 상대방의 매정함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럴 때 진심이 전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마음을 열고 받아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나라 역사를 돌아보면 신하가 임금에게 백성의 뜻을 모아 상소할 때가 있다. 뜻을 받아줄 때까지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상소를 받아줄 때까지 밤낮으로 기다리는 문화가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시간이 걸려도 무엇이 바른길인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길인지 분명하다면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인내가 필요하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연약함으로 인해 넘어졌을 때 그것을 처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먼저 할 일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들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미쁘신 하나님의 넉넉한 자비를 사모하며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피해 입혔거나 잘못을 범한 대상을 찾아가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 대상이 다수라면 모임을 찾아가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생명의 길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나는 죽고 내 안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한다. 부패한 내 모습은 감추어지고 내 안의 복음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드러내고 내가 인정받기를 원하는 욕망이 우리의 삶을 흔든다. 우리 안에 드러날 것은 내가 아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이며, 복음이 드러나는 삶이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주님을 바라본다. 시선을 다른 곳에 빼앗기지 않고 오직 주님만 따라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