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것이 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이다. 반드시 우리기 어떤 존재인지 그 실제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 땅의 사람들은 둘 중 하나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든지 아니면 마귀의 자녀이다. 중간 지대는 없다. 요즘 ‘마귀의 자녀’라는 표현만 하여도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로 분류한다.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은 사람이다(3:1).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이다. 성부 하나님이 구원을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이 구원 사역을 완성하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고 거듭나도록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결과이다. 십자가 은혜를 덧입은 사람이다.
십자가 은혜를 덧입는 과정을 어떻게 증명할 방법이 없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할 때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한다. 거듭났으면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었는지 덧입지 않았는지 나타난다는 것이다.
드러난다는 것은 모양을 내어 나타낸다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막 애써서 만들어 내는 행동이 아니다. 우리 내면 본성이 변함으로 자연스럽게 행동까지 변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신비이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들의 행동을 바꾸어 보려고 한다. 그런데 행동을 바꾸기 전에 본성이 바뀌어야 한다. 거듭난 본성을 소유하면 겉으로 반드시 행동이 변화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런 진리를 소홀히 여기면 안된다. 가끔 우리들의 노력으로 거듭남을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녀에게는 두 가지 증거가 드러나야 한다. 하나는 의를 행하는 것이다. 불법, 말씀을 어기는 삶이 아니라 말씀을 따르는 삶이다. 불법의 삶을 완벽하게 끝내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우리의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다(4절).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나타나셨다(8절). 하나님의 자녀가 죄짓지 않고 의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씨가 속에 거하기 때문이다(9절). 내 노력, 내 힘으로 만들어 내는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주신 씨가 자연스럽게 변화된 삶을 만들어 낸다. 주의 나타나심, 재림을 소망하며 깨끗한 삶을 살게 한다(3절).
둘째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목숨을 내어주신 주님을 본받아 아낌없이 내어주는 형제사랑이다. 자신의 의로움을 얻어내고자 동생을 죽인 가인같이 살면 안 된다. 사랑도 나의 의로움을 증거 하고자 하면 안 된다. 조건 없는 사랑을 입었기에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의를 행함과 형제 사랑은 거듭난 성도의 삶에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할 증거들이다. 내게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루를 살기를 소망한다. 의로운 삶과 형제를 사랑하는 삶이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길 기도한다. 언제 어디에서 하나님을 닮은 모습만 나타나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