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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4:26)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세겜에 의해 동생이 강간을 당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억울하게 생각한 야곱의 아들들은 복수를 계획한다. 할례라는 방법을 사용하면 효과적으로 세겜 사람들을 보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디나와 결혼을 원하는 세겜과 세겜의 주민들에게 할례를 요청한다. 할례를 받고 힘들어 할 제 삼일에 칼로 보복을 한다. 그리고 디나를 되찾아 데려온다.

세겜에서 자리를 잡고 평안하게 살고자 했던 야곱의 기대는 물거품이 된다. 디나의 일에 대해 야곱은 한 발 물러나 있는 모습이다. 그 사이 아들들은 ‘할례’를 보복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하몰과 세겜을 속이고 할례로 인해 고통스러워 할 때 기습하여 성읍의 모든 남자들을 죽인다.(25절) 그리고 성읍과 성 밖의 동물들과 모든 재물을 빼앗고, 그들의 자녀와 아내를 사로잡고, 집 안의 물건들을 다 노략질한다. 디나가 당한 부끄러움에 대한 보복으로 더 큰 악으로 세겜을 징벌한 것이다. 야곱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때 그들은 당당하다. “그들이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습니까?”(31절)

악을 대항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악을 제거한다는 명목 아래 더 큰 악을 행하면 안 된다. 목표하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를 이루어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결국 악한 보복행위를 감행한 레위와 시므온은 야곱으로부터 저주를 받는다. 오늘 나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먼저는 ‘정직’이다.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야곱의 아들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마치 자신들의 말만 들어주면 아무런 문제 없이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루어질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정반대 죽음을 안겼다.

‘진실함’은 최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와도 연결되어 있다. 한 사람의 정직함이 지역사회와 나라 전체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경험하고 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할례’와 같은 종교적 의식을 이용하는 것처럼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신앙’을 이용하는 어리석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바른 관계를 그 기초가 ‘정직’이다. 하나님은 성도가 진실하게 살기 원하신다. 거짓말, 다른 사람을 속이는 행위는 하나님 자녀의 특징이 아니라 사탄의 전유물이다.

최근 품귀현상으로 인해 구하기 어려운 ‘마스크 대란’도 생각할 부분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없는지 되돌아 볼 때이다. 분명히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니 부족할 법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대처하는 나의 모습이다. 나의 필요만을 생각하다 이웃의 불편함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이웃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나누는 삶이 내 삶의 한 부분인지 되돌아 볼 때이다. 우리의 삶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다. 누군가 속이고 거짓말을 하면 그 피해는 주변 이웃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다. 나의 속임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주님의 말씀을 되새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