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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여 잔치를 베푸신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이다. 혼인 잔인 기약이 이르러서 신부가 준비된다. 신부가 예복을 입는데,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이다. 잔치의 격에 어울리는 옷이 있듯 하나님은 신부의 예복을 입히신다. 그 세마포 옷을 신부가 스스로 입는 것이 아니다. 입도록 허락하신다. 하나님께서 입혀 주었다는 뜻이다.

이 세마포 옷은 성도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도록 허락받고 입게 된 옷이다.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옷이다. 우리가 노력하여 입는 옷이 아니다. 자기 행실과 노력으로 입는 옷이 아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구속으로 입혀 주시는 옷이다. 거듭남의 옷이며, 성령으로 입혀 주시는 옷이다. 우리 죄를 씻는 보혈의 옷, 생명의 옷이다.

신부의 예복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내가 입고 싶다고 해서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입는 옷이다. 창세 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은혜를 따라 우리를 불러주셔서, 거듭나게 하셔서 입게 하시는 옷이다. 나를 구원하시고 새롭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시선을 하나님에게 고정하길 소망한다.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설명한다. ‘성도의 옳은 행실’이란 표현은 우리의 노력으로 선을 행하고 바른 삶을 살아서 입으라는 것이 아니다. 오해이다.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본성을 하나님이 거듭나게 하심으로,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심으로 새로운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삶이다.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 백성의 삶을 흘러나오게 되어 있다. 겉모습만 신경 쓰며 화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변화가 아니다. 우리 중심이 변화되어야 한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누가 무어라고 말하지 않아도 긍휼의 마음이 나와서 우리 주머니를 열어 나누며 섬길 수 있어야 한다. 강요된 사랑이 아니라 자발적 사랑이다.

거듭나서 새로운 본성을 가지면 입맛이 변한다고 한다. 영적 미각, 영적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다. 먹어도 맛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서 하나님이 하셨음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영적 감각이 살아나면 무엇이 옳은지 틀린 지 분별력이 살아난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마음에 품을 수 있다.

내 안에서 나를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 백성으로 다듬어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하루를 살아가길 기도한다. 복음에 합당한 열며, 거듭남의 열매가 성도의 옳은 행실로 열매 맺히길 기도한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마음과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열매로 맺히는 것을 경험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