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와 삯꾼 (요 10:11-12)
(요 10:11-12)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시며,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오셨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익숙한 목축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소개한다. 나는 양의 문이며, 양에게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신다. 양이 우리에 들어갈 때 양들이 통과하는 문이 있다. 바로 그 문이 되신다는 것이다. 양들이 예수님을 통해 들어가며 나오며 안전하게 생명을 지키고, 풍성한 꼴을 누린다는 것이다.
문이 되신 예수님은 또한 선한 목자가 되신다. 선한 목자의 이미지를 설명하기 위해 선한 목자의 반대되는 목자를 설명하신다. 삯꾼 목자이다. 삯을 위해 일하는 목자이다. 예수님은 삯꾼이 아니라 선한 목자이다. 삯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준다. 자기 목숨처럼 양을 생각한다. 그래서 양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어준다.
양들을 위해 기쁨으로 목숨을 내어주는 것은 양들을 위함이다. 양들이 안전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다. 마음껏 푸른 초장에서 좋은 꼴을 뜯어 먹고, 맑은 물을 마시며 평안한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이 양을 위해 생명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 빈틈없이 살피시고, 보호하시고 앞장서서 인도하신다. 양에게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신다.
삯꾼은 주인에게 고용된 일꾼이다. 양도 자기 양이 아니다. 삯을 받은 만큼만 일하면 된다. 그러니 위험이 다가올 때는 도망한다. 양들의 목숨보다는 자기 목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삯을 받고 일하는 일꾼으로 목숨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한다. 삯꾼은 양보다는 자기 생명이 더 중요하다.
선한 목자의 관심은 양들에게 있다. 양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생활하는 데 있다. 양들이 안심하고 꼴을 먹고 평안하게 쉼을 얻으며 목자를 따르게 한다. 항상 주변을 살피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양들을 돌본다. 하지만 삯꾼은 양 떼의 형편에는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내가 더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한다. 오로지 자기를 위해 일한다.
삯을 생각하며 일하는 것과 양 떼를 위해 일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내가 사는 이유와 목적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로 사셨다.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다.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을 보여주셨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리들이 안전하고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율법의 기준과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에 사로잡혀 힘든 삶을 살기 원치 않으신다. 선한 목자이시다. 구별되게 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 실패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구별된 사람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무엇이 다른지 보여 주려는 것이다. 우리 삶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의 노력과 열심에 있지 않다. 우리를 잘 아시는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달려 있다. 예수님을 통해 내 삶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 문제 해결 방법들을 보며 따라가는 것이다. 그렇게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주님을 닮은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다. 무한 경쟁과 다양한 유혹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행복하고 구별되게 사는 길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다.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며 주님을 따라 살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