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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젊은이, 자녀들은 훈계를 싫어한다. 책망은 더욱 싫어한다. 그런데 훈계의 책망이 생명의 길이라고 하신다. 무엇으로 훈계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자신의 생각과 필요를 훈계로 하면 잔소리가 된다. 그러나 자녀에게 정말 필요한 진리의 말씀으로 훈계를 하면 당장을 싫어해도 그 마음에 새겨지는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명령은 등불이다. 하나님의 법은 빛이다. 캄캄한 세상을 헤쳐 나아갈 때 꼭 필요한 것이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말씀이 때로 우리의 발걸음을 훈계한다. 바른 길이 어떤 길인지 가르쳐 준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도록 인도한다.

부패한 심성으로 악이 가득한 우리가 마음대로 행동할 때는 책망한다. 그 길로 가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래도 악한 우리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는가. 그렇게 사는 것은 죽는 길이다. 생명의 길은 그 훈계와 책망을 마음에 받는 것이다.

훈계와 책망이 우리를 지킨다.(24절) 특히 악한 여인의 홀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지켜준다. 젊은 날 가장 넘어지기 쉬운 것 중 하나가 성적 타락이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넘어질 수 있다. 문제는 우리 마음에 있는 탐욕이다. 자꾸 아름다움을 탐하고, 눈길을 주면 넘어진다. 타락한 사회는 여성을 상품화하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여성의 관능적 아름다움을 사용하여 유혹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구별되게,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게 구별되고, 깨끗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성적 타락은 우리의 몸만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 오염시킨다. 영혼을 망하게 만든다. 더욱 경계하고 피하며 오염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할 이유이다.

성적 타락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아름답게 포장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세상의 가치에 자연스럽게 편승하여 무감각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민감하게 깨어 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넘어진다. 찬물에 들어간 개구리를 서서히 온도를 높여가며 삼는 것처럼 세상은 우리를 세상의 가치로 삶으려 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도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훈과 책망을 달게 받으며 주를 사모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 내 안에 말씀이 가득하여 말씀만으로 행복하고, 말씀의 힘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말씀이 이끄시는 대로 오늘을 살기 소망한다.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말씀만 마음에 새기고 따라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