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2: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였다. 그 당시 성도들은 어렵고 힘들게 이 땅에서 살았다. 생명을 위협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지 않고는 힘든 고난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주님은 성도들이 어려움을 만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니 ‘깨어 준비하라’ 하신다.
재림을 얼마나 사모하는가? 그때를 기다리는가? 이 세상이 좋아서 주님이 좀 더디 오셨으면 하는 생각이 있는가? 주님은 분명히 정하신 때가 되면 오실 것이다. 거짓말하지 않으신다. 반드시, 틀림없이 오신다. 문제는 우리들의 기다리는 마음가짐과 준비하는 자세이다. 우리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시기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주님은 ‘생각지 않은 때’에 오신다고 하셨다.
‘생각지 않은 때’는 우리가 느끼는 때와 다른 때이다. 우리의 생각 밖의 일이다. 우리의 이성적 판단과 예측으로 알 수 없는 때이다. 우리의 생각과 일치할 수도 있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우연의 일치이다. 이성으로 분석하고 예측한 때와 실제 주님이 재림하시는 때는 일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치 도적이 언제 오겠다고 말하지 않고 찾아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때는 알 수 없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우리는 재림의 때를 생각하며 기다린다. 생각하고 준비하며 기다리면 되는데 우리는 자꾸 그때를 예측하려 한다. 주님의 뜻은 예측이 아니라 준비이다. 그때를 예측하면 보다 합리적인 신앙생활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효율적인 면에서도 더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주님이 왜 그때를 모르게 하시겠는가. 우리에게 유익보다는 손해이기에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때를 예측하지 못하게 하셨다. 예측이 아니라 예비하게 하셨다. 우리의 본성이 악함을 아신다. 주인이 조금 더디 온다는 말만 들어도 자세가 흐트러지고 내 마음대로 하려 한다. 세상을 즐기고 놀다가 오실 시간에 맞추어 준비하려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주님의 부탁은 그때를 알지 못하니 항상 깨어 있으라 하셨다. 언제 오시든지 맞을 수 있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때를 알면 자랑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라고 하신다. 삶의 주권이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음을 알라는 것이다. 내 생각과 내 마음대로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그 뜻을 따라 살라는 것이다.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면 깨어 있어야 한다. 등불을 켜고 있으라 하시면 순종하면 된다.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세는 깨어 있으면서 언제든지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내 생명이 있는 모든 날, 언제든지 주님이 오실 수 있다. 주님이 주신 귀한 것들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 주님 뜻대로, 주님이 맡겨주신 것을 주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선한 행실을 통해 등불을 밝히 비추며 언제든 주인을 맞을 준비를 하며 사는 것이다.
항상 주님 맞을 준비가 된 지혜롭고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살기를 기도한다. 주님은 생각지 않은 때에 오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를 알지 못하기에 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언제 오시든지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렇게 당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인의 삼경은 새벽 2-6시이다. 그때까지 깨어 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하라는 것이다. 충성스럽게 깨어 있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