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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 13:8)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 예수님 당시 문화적 상황으로는 매우 파격적인 행동이다. 발을 씻어 주는 사람은 종들이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기 발을 씻어주려고 할 때 거부한다. 강하게 거부한다. 스승께서 종들이 하는 일을 하게 할 수는 없다는 마음이다. 자기가 스승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하는데, 반대로 스승이 발을 씻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거부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상관이 없다는 것은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거듭남, 새로 태어남, 예수님과 연합함, 세례 받음, 믿음”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상관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며, 구원의 언어이다. 성도라는 호칭은 주님과 관계를 맺음으로 주어지는 이름이다.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성도답게 살아가는 거룩함은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주님을 따를 때 주어지는 삶의 열매이다. 영생은 주님과 관계를 맺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값없는 선물이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함으로 우리는 주님과 관계를 맺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님의 형제가 되었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였고, 주와 함께 다스릴 자가 되었다. 주님을 닮은 주님의 사람, 예수님을 닮은 향기가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사람이다.

성도는 세상과 관계를 끊은 사람이다.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의 가치와 세상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다. 따르면 주어지는 유익이 있어도 기꺼이 그 유익을 포기한 사람이다. 죄의 종노릇하는 상태에서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었다. 죄가 더 이상 내 삶을 주장할 수 없는, 지배할 수 없는, 그래서 참 자유를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오늘을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누구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가? 나와 상관있는 것은 무엇인가? 소속이 분명한가? 확실한 소속감, 주와 연합한 삶,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셔서 주님이 드러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