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계 18:11)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바벨론의 멸망, 로마제국의 멸망을 보면서 슬퍼하며 애가를 부르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 중 한 그룹은 땅의 상인들이다. 이들은 다양한 물품들을 로마에서 매매하면서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로마제국이 멸망함으로 안정적이고 확실한 소비자들이 사라진 것이다. 더 이상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 때문에 울고 애통해한다.

애통해하는 상인들이 팔았던 물품들은 금은보화와 귀한 옷감들이다. 그리고 일상생활보다는 잔치에서나 사용되었을 귀한 그릇들이다. 또 음식의 맛을 좌우는 각종 향료와 조미료들이다. 그리고 고운 밀가루, 밀, 소와 양과 말과 같은 식재료들이다. 이런 것을 파는 상인들은 생필품을 파는 상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들이다.

한 나라에서 생필품에 해당하는 것을 가격을 조정한다. 일반 서민들의 삶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고가의 사치품들은 시장의 환경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서이다. 막대한 이익을 남기기 위해 상인들은 고가의 사치품을 더 선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품을 사는 사람이 사라지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이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을 매매했다. 종들, 노예들을 매매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로마에 노예의 수가 6천만 명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영혼은 매매가 불가능한 것인데 영혼들을 매매했다는 것은 생명을 사고팔았다는 것이다. 돈이면 무엇이든 사고파는 세상이었다. 이런 사회를 즐기고 좋은 사회라고 여긴 사람들이다.

파는 사람이 있는 것은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서 살아간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고 산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따라 건강하게 사는 비결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함께 잘 사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걸어야 한다. 나의 이윤과 필요만 생각하는 삶이 아니라 나와 함께 이웃이 잘 살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더불어 잘 사는 길은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세상의 화려함과 부귀를 나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먼저 할 일이 있다. 복음을 나누기 전 먼저 우리의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다. 이기심을 내려놓고 이웃에게 사랑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이타적인 삶,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이웃 사랑은 말과 혀로 하면 안 된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한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함이다. 지옥 멸망이 아니라 천국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가 이 영생의 삶을 값없이,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 누리고 있다.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조건 없이 나눌 것은 복음이다. 세상의 것 때문에 울고 웃는 삶이 아니라 한 영혼을 품고 울고 웃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