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6: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신앙생활에서 재물에 대한 건강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삶을 재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돈이 있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도 섬기고 재물도 섬기고 싶어 한다. 믿음 좋은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가르치신다. 하나님이든지 재물이든지 둘 가운데 하나만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니다. 내 삶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주체가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 뜻을 따라 재물을 사용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의한 재물, 제한적이고 한시적인 재물을 가지고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이웃과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자는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연락을 즐긴다. 하지만 자기 집 앞에 구걸하는 거지 나사로의 굶주림을 외면한다. 살았을 때 불의한 재물로 가난한 이웃을 전혀 돌아보지 않던 부자도 죽고 나사로도 죽는다. 죽음 이후 두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뀐다. 부자는 음부, 지옥에 들어가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 천국에 들어간다.
부자의 상은 산해진미로 가득했을 것이다. 날마다 호화로운 삶을 살고, 날마다 친구들을 불러서 잔치를 벌였을지도 모른다. 자기와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데는 아끼지 않고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대문 앞의 거지 나사로는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도 얻지 못한다. 부스러기조차도 그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먹는다. 부자는 한 번이라고 거지 나사로를 마음 깊이 생각했어야 한다.
자신은 좋은 것을 먹을 때 굶주리고 어려움을 겪는 이웃이 있음을 생각했어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물을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사용할 마음을 가졌어야 한다. 적어도 자기 집 문 앞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누어야 한다. 자기 집에 찾아온 나그네를 외면하지 않고 섬기는 환대의 문화처럼 집 문 앞의 누추한 삶을 사는 나사로를 섬겨야 했다.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받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지 않은 사람은 죽어서 지옥에 간다. 혀끝에 물 한 방울만이라도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 하지만 살았을 때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만 의지하며 소망을 하늘에 둔 사람은 죽어서 위로받는다. 천국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삶을 산다. 무엇이 두 사람의 운명을 죽음 이후에 갈라놓았는가?
재물에 대한 이기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물을 주시고 부를 주시는 것은 이유가 있다. 자신만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이웃과 나누라는 것이다. 자기 내면에 있는 이기심과 탐욕을 경계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웃과 나누라는 것이다. 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자기 삶에 사용하기 바쁜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했다. 좋아한다는 것은 단순히 “많았으면 좋겠다”라는 정도가 아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돈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라는 것이다. 돈에 애착을 두고 더 많은 돈을 취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돈을 다스리지 못하고 돈에 끌려다니며 산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재물에 대한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라고 하신다. 손을 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진 재물을 흘려보내라고 하신다. 산불 피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손을 펴서 나누라고 하신다. 재물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지 않고 그 음성을 따라 순종하며 살기를 기도한다. 오늘 하루도 말씀이 교훈하는 그 길을 걸어가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