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3: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겸손하게 출발한 사울이 기다림에 실패한다.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모였다. 비교되지 않는 군사력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사무엘은 약속된 시간에 오지 않았다. 7일을 기다렸다. 백성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다급한 사울은 자신이 번제를 드린다. 그런데 마치 사울이 번제를 드리길 기다렸다는 듯이 번제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왔다. 그리고 사무엘이 왜 왕이 제사를 드렸는지 묻는다. 이에 대한 답이 “부득이하여”이다.
‘부득이하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선택이 없어서’라는 표현이다. 그때의 상황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계상황’이 있다. 사울은 기다림의 한계상황을 만났을 때 넘어서지 못했다. 제사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도착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한계상황을 조금만 견디어 냈다면 자신이 아니라 사무엘이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백성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이 백성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나라도 제사를 드려서 백성들이 불안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의도는 선하다. 자신이 제사장의 역할까지 감당하려고 한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도가 선하고 좋아도 하나님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를 절대 간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것보다 우선순위에 두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멈추라고 하면 멈추고 가라고 하면 가는 신앙인이 되라고 하신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백성을 위하고 하나님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내면에서는 나의 필요와 유익을 위해 행동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사울의 불순종을 보면서 핑곗거리를 찾기보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는 믿음을 구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성도답게 살 수도 없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날마다 자라가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한다. 믿음은 내 마음과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고 말씀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믿음은 우리를 여유 있게 한다.
문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수준에 이르지 못함이다. 함량이 부족한 믿음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 생활을 하길 소망한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믿음 생활이다. 어떤 한계상황을 만나도 기다릴 줄 알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극한의 상황을 넘어서는 믿음을 간구한다. 설령 넘어질지라도 핑곗거리를 찾기보다는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