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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77:6)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 누구나 흔들리기 쉽다. 현실의 아픔과 고통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다. 갑갑한 현실로 인해 낙심될 때 그래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도할 수 있고 그 하나님이 일하실 때를 기다릴 수 있다.

절망의 밤은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사랑의 초청이다. 절망의 밤이 길어질 때가 문제이다. 기도가 오래지 않아 응답 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따라갈 수 있다. 그런데 견디기 힘들 때까지 견디었음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가 고통의 때이다.

시인이 불면의 밤에 기도를 회복한 것은 밤에 부른 노래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모양은 달라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인생에 고통의 때가 한 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인은 또다시 절망의 밤에 과거 밤에 부른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

시인은 출애굽과 홍해 사건을 기억한다. 역사를 되돌아보고, 역사 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을 기억해 낸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손으로 구원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 수장될 위기에 놓였을 때, 불평과 원망이 절로 나오는 절망의 밤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목자처럼 인도하신다.

큰 바다 물결 아래 길을 내셨다. 누가 바닷물 아래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 있다고 생각했겠는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셨다. 우리의 생각에는 없어 보이는 길도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얼마든지 만드실 수 있다. 사막에 물길을 내시고, 하나님 백성을 위로하고 먹이시는 하나님이시다.

동서남북, 사방팔방이 다 막히면 하늘을 보라는 말이 있다. 절망의 밤에는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영안이 열려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주변을 정리하시고 하나님의 때를 따라 일하신다.

우리에게 주어진 밤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밤이다. 벗어나려 발버둥 치기보다는 견디어내야 하는 고난이다. 형벌이 아니라 사명이다. 다른 고통 가운데 있는 지체를 위해 나를 훈련하시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 가장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섭리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걸어가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