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4:34-25) 34) 슬기로운 자와 내 말을 듣는 지혜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내게 말하기를 35)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엘리후는 욥이 한 말을 문제 삼고 그를 훈계한다. 엘리후 역시 말로 욥을 몰아세운다. 심지어 그가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한다고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엘리후가 욥을 공격하는 것은 욥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37절) 그런데 엘리후의 욥에 대한 판단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기준을 따른 것이다.
엘리후도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그는 하나님을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 하나님을 비유한다.(35:5) 하나님은 우리를 초월해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후는 이 땅은 인간의 선악이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초월해 계시지만 또한 우리 삶과 내면에 내재해 계신다.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아들이 떠난 후에는 성도 내면에 성령이 머물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묵상하는 성탄의 계절이다. 하나님이 우리 함께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 구속 사역을 마무리하고 떠나시면서 대신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셨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된 삶을 살게 하셨다. 그러니 엘리후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맞는 듯하나 틀린 것이다.
우리들의 이해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그 이해가 완벽한 것처럼 다른 사람을 말로 공격하는 행동을 포기해야 한다. 욥이 엘리후가 판단할 때 그 기준은 욥이 한 말이었다. 욥이 하나님을 향하여 그가 거칠게 말한 것이다. 그 말을 분석하고 그 말을 기준으로 욥의 허물을 언급하고, 욥이 주장하는 의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의라며 비판했다.
말을 조심해야 할 이유를 다시 마음에 새긴다. 지혜자는 말을 아끼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길임을 알려 주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0:19)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잠 17:27) 그래서 지혜자는 권면한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16:20)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에 주의하는 자가 좋은 것을 얻는다. 항상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사람이다. 예수님도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교훈하셨다. 길 가, 돌이 많은 밭, 가시떨기 가운데 떨어진 씨앗을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땅에 떨어져야 열매가 맺힌다. 말씀을 마음 중심에 잘 간직해야 풍성한 열매를 맺힌다.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내면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간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열매가 맺힌다.
생활할 때 할 말을 아끼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신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좋은 것을 얻는다. 온갖 좋은 것들은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살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우신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없는 것 때문에 이웃과 비교하고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이 채우시고 일하실 때가 반드시 온다. 하나님 말씀을 품고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