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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2: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솔로몬 왕은 반역에 가담한 아비아달을 선처한다. 반역죄는 나라를 흔드는 가장 악한 죄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역죄에 대한 형벌은 죽음이다. 아비아달도 죽음으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를 제사장 직분에서 파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한다. 생명은 살려준다. 은혜를 베풀어 준다. 이제껏 그가 살아온 삶과 충성을 기억하며 살려준 것이다.

아비아달은 다윗과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러운 제사장이었다.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 궤를 메었던 사람이다. 또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할 때 다윗과 함께하며 도왔던 사람이다. 위기를 만나 어려움을 겪을 때 도망하거나 자기 이익을 찾아 떠나지 않고 신의를 지킨 사람이다. 충성된 사람이었다.

솔로몬은 이것을 기억했다. 아비아달이 이제껏 심은 선한 씨앗을 기억하고, 그에게 은혜를 베푼다. 하나님의 사람은 은혜를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선을 행하고, 충성하는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함께 길을 가도록 붙여주신 동역자들을 귀하여 여겨야 한다. 필요와 이익을 위해 협력하는 동업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땅끝까지 복음 전하도록 붙여주신 동역자이다.

동역자는 동고동락하는 사람이다.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위기의 순간에도 버리고 도망하지 않는 사람이다. 함께 고난을 견디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주의 일을 감당할 때 항상 우리가 홀로 감당하지 않도록, 혼자 걷다가 쓰러지지 않도록 동역자를 붙여주신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힘든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아비아달은 동역자의 길을 끝까지 걷지 못했다. 하나님과 다윗을 향한 충성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를 도왔고 솔로몬을 대적하는 편에 섰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에 선 것이다. 하나님의 대적하는 사람은 평안할 수 없다. 결국 자신이 가진 것까지 빼앗기고 낙향할 수밖에 없었다.

제사장 직분은 종신직이다. 누가 권력을 잡아도 제사장 직분은 파면할 수 없는 직분이다. 그런데 그는 무슨 이유로 아도니야를 따라 반역의 길에 섰을까? 여러 가지 추측할 수 있다. 평소에 왕자들 가운데 솔로몬보다는 아도니야와 가까이 지냈기에 그의 편에 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인간적인 정과 관계를 뛰어넘는다. 하나님을 따르는 데 방해가 된다면 인간적인 정도 내려놓으라 한다.

우리도 마땅히 죽을 자이다.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천국 소망을 갖게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때문이다. 은혜이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기에 마땅히 죽어야 할 내가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풍성한 삶을 살게 되었다. 당장 눈앞의 이익과 내 필요 때문에 아비아달과 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으며 신의를 지키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