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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9: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바울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죽이고 해산시키기 위해 분주할 때 하나님은 바울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예수를 더 이상 핍박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다. 이방인과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도 주셨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으면서 그의 눈이 열렸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삶의 방향이 분명해졌다.

바울은 전에 귀하게 여기서는 세상의 일들을 내려놓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만을 위해 삶을 드린다. 일부분이 아니다. 전부를 드렸다. 자기의 천막 만드는 기술까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린다. 결혼도 포기한 채 오로지 복음 전도에, 세계 복음화에 전념한다. 항상 그는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따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원했다.

바울은 땅끝을 바라보았다. 바울이 생각했던 그 당시 땅끝은 서바나, 스페인이었다. 로마에 가서 로마의 성도들이 자신을 스페인으로 보내주길 기대했다. 이 사명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간다. 위협과 핍박이 멈추지 않고, 오히려 유대인들이 핍박한다. 분명히 예루살렘 교회의 이방인 선교에 대한 결의가 있었음에도 대적자들이 있고, 그들은 물리적 공격을 일삼았다.

바울의 마음에는 로마가 있다. 만 개도냐, 아가야, 예루살렘은 바울이 거쳐 가야 하는 곳이다. 끝까지 가야 할 곳은 로마이다. 그의 인생의 목표이다. 자기 욕심이나 판단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인도하는 대로 순종한다. 시선을 확실하게 고정했다.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에 집중했다.

가는 길을 방해하는 어떤 강력한 힘이 나타나도 낙심하지 않는다. 가야 할 곳이 있고, 해야 할 사명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고 나아간다. 바울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혹 죽음을 맞이해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길 원했다. 그의 삶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사는 것이다.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드러나길 원한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며 행동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에 매일 한발씩 다가가는 것이 작은 것 같아도 결국에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이룬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서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내 필요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인가?

우리는 결코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꿈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매일 그 꿈을 되새김질하며 하늘을 바라본다. 시선을 땅에 고정하면 땅에 일만 생각난다. 그래서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의 하나님이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발걸음을 내디딘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묵묵히 따라가며 주님을 닮아가길 원한다.

내가 바라보며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거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집중하여 달려가야 할 곳, 종착역, 그곳은 어디인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운동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향해 비지땀을 흘리며 수고하듯, 바울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갔듯이 내가 바라보며

달려가야 할 곳을 향하여 오늘도 하루의 첫 발걸음을 내디딘다. 하늘의 은혜를 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