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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6:14)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낙심에는 이유가 있다. 자기 잘못으로 인해 낙심한 경우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자꾸 넘어지는 것이다. 분명히 잘못인 줄 아는데, 피하고 싶은데 넘어지는 경우이다. 연약한 자기 모습을 보면서 낙심이 되는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데 기대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힘든 세상살이에 낙심한 경우이다. 세상이 나를 속이는 경우이다. 땀을 흘리고 수고하면 열매를 누려야 하는데 주어지는 것은 상처뿐이다. 마음에 품은 생각과 달리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데 소용이 없다. 그 누구도 진실을 외면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평가하려는 것 같다. 노력과 애씀이 헛수고로 돌아갈 때이다.

바르게 살고 정직하게 사는데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우이다. 세상은 속여도 하나님은 내 마음을 알아주셔야 하는데 하나님마저 외면하시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면 힘들다. 평소보다 신앙적 결단을 따라 더욱 헌신적인 삶을 사는데 오히려 어려움이 많아지는 경우이다. 말씀과 기도를 소홀히 여기지 않고, 봉사도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애쓰는데 상황은 악화될 때 낙심된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신앙의 슬럼프가 찾아온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 나는 정말 잘살고 있는가, 신앙생활에 문제는 없는가 되묻게 된다. 뾰족한 답이 없다. 몸부림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 믿었던 친구들마저도 외면한다. 더 이상이 피할 곳이 없다 생각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저버릴 위기에 놓인다. 마음의 마지막 결단만 남게 된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믿다가 쉬고 계시는 분들을 만난다. 마음을 열어주어서 속 이야기를 듣게 되면 대부분 신앙생활의 상처이다. 고난을 감당할 힘이 없어 넘어진 경우이다. 그럴 때 이들은 조금만 누군가 곁에서 붙잡아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홀로 걸어가기 힘든 세상살이이며, 신앙생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떠 오른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정말 그렇다. 삼겹줄처럼 쉽게 끊어지지 않는 든든한 동역자가 필요하다. 나 혼자면 패하기 쉽다. 적어도 둘 이상이 되어야 한다. 함께 마음을 같이하며 손잡고 걸어갈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좋은 친구는 어떤 친구인가? 동정(헷세드)이 있는 친구다. 한두 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단어이다. 동정을 포함하여 사랑, 은총, 은혜, 신실함, 충성 등등 다양하게 번역되는 단어이다. 헷세드가 있는 믿음직한, 그리고 긍휼과 사랑을 넘치는 친구가 필요한 세상이다. 그런 친구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친구를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와 같이 이 땅의 삶을 경험하셨고, 죄 없으신 분이시다. 우리들의 약함과 필요를 실제적으로 아신다. 다양한 관계에서 만날 수 있는 경험들을 다 겪으셨다. 우리를 너무 잘 아신다. 그래서 우리를 초청하신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라고 하신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은혜의 보좌 앞이다. 그곳에서 속마음을 열고 토로하며, 도우심을 구하자. 그리고 기대해 본다. 좋은 친구 만나기 어려운 세상에서 주님을 경험하며, 내가 이웃의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른다. 당장이라도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좋은 친구였다고 말해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주를 만나 자꾸 경험하고, 느끼며 소망하다 보면 ‘큰 바위 얼굴’의 이야기처럼 내가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이 되는 그날이 오리라. 이 땅에 흘러넘치는 좋은 친구로 인해 웃음꽃 필 날을 기대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