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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5: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막 15: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고 죄가 없음을 확신한다. 시기하는 사람들의 함정임을 직감했다. 경쟁상대라고 생각한 대제사장들의 시기심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풀어주고자 한다. 방법을 찾고 해결책을 향해 나아간다. 명절마다 죄수 한 사람을 풀어주는 전례를 활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리들도 같은 생각이다. 빌라도에게 찾아와 전례대로 해 주기를 요구한다. 그들은 빌라도보다 먼저 생각한 것이다. 빌라도가 이것을 사용하여 예수를 풀려주려 시도할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한 발 빨리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분명하게 말한다. ‘바라바’를 놓아달라는 것이다. 이 사람은 체제 전복을 시도했다. 정말 반란을 시도한 사람이고, 살인자이다. 로마의 입장에서 본다면 처형해야 할 최우선 순위의 사람이다. 하지만 반대로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애국자로 비춰졌을 것이다. 분명히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바라바를 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빌라도는 당연히 무리가 예수를 요구할 것이라 생각한다. 시기와 질투로 넘겨준 예수가 바라바보다는 훨씬 더 선하다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묻는다.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드러낸다. 예수를 풀어주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이런 속셈을 알게 된 대제사장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또 다른 방법을 동원한다. 군중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충동한다. 결국 사람들은 “예수가 아니라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강력하게 소리지르면 요청한다.

영적 분별력이 필요하다. 옳고 그름, 내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인지 살펴야 한다.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와 생각이 달랐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결코 같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다. 오해하면 빌라도처럼 실패한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넘어뜨리려 한다. 사탄의 유일한 관심사는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우리를 ‘위하는 척’하지만 다 속임수이다.

상황에 대한, 그리고 우리 신앙에 대한 느슨하고 안일한 생각이 넘어지게 한다. 주님 말씀처럼 깨어 있어야 한다. 기도하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영적 분별력이 살아난다. 영안이 흐리지 않고 선명하게 유지된다. 오늘 하루도 나를 부르신 소명,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점검하자. 그리고 이 길을 걷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악한 세력, 사탄이 있음을 기억하자. 매 순간 하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주와 동행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