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행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은 바나바와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행하는 동역자들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도중하차하게 되었다. 마가 요한이다. 선교여행의 수행원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행13:5). 수행원은 조력자, 협력자로 곁에서 일을 배우며 돕는 조수이다. 바울과 바나바의 손으로 다 할 수 없는 일들을 돕는 사람이 요한이었다. 그런 요한이 도중하차를 한 것이다.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도 힘이 들지만, 그 일을 조용히 묵묵히 돕고 섬기는 사람도 힘이 든다. 아니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겨야 한다. 그래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마음을 같이하며 동역하는 사람이 떠난다는 것은 팀에게 큰 상처이다. 홀로 가기 힘든 길이기에 팀으로 일하게 하신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낫고,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이 낫다.

삽겹줄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자기만을 생각하며 도중하차하는 것은, 분명히 불편한 일이다. 다른 팀원들에게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사람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도중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배려는 이웃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을 정죄하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후에 바울은 마가 요한이 선교여행 중에 포기하고 돌아간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했다. 배신행위로 여겼다(행 15:38). 바나바와 바울이 이 일로 심히 다투고 피차 갈라서서 서로 다른 팀을 꾸려 2차 선교여행을 출발한다(행 15:39). 서로의 사역의 형태가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달라서 다투고 갈라서지만 하나님은 그것조차도 선하게 사용하셔서 선교팀이 두 팀이 되게 하신다.

도중하차,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할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면 바나바처럼 끝까지 믿고 함께 하며 품어줄 수 있어야 한다. 배려가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게 한다. 개구리에게 올챙이 시절이 있듯이 누구나 연약한 과정이 지나서 견고하게 서기 마련이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는 없다. 뒤집기와 기어 다니기를 지나야 일어선다.

기다려 주고 할 수 있다고 칭찬하여 격려해야 한다. 마가 요한은 이런 바나바의 사랑으로 훗날 바울에게 큰 도움이 된다. 바울은 빌레몬서에서 마가 요한을 자신의 동역자로 소개한다(몬 1:24). 또 디모데후서에서는 자신에게 유익한 사람이니 꼭 데려오라고 요청한다(딤후 4:11). 불편한 관계가 회복되고 동역자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유익한 사람으로 세워진 것이다.

하나님이 쓰실 수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아직도 공사 중이다. 보잘것없는 진흙 덩어리도 위대한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값진 그릇으로 빚어질 수 있다. 하나님이 빚어가시는 과정에 여러 어려움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큰 그릇은 오래 빚는다. 세워지는 데 시간이 많이 들고 더디 가는 사람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 손에 귀히 사용되는 큰 그릇이 될 수 있다.

오늘의 나를 보며 낙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길로 빚어주시길 기도한다. 성령의 만지심에 내 자아를 맡기고 하나님이 모난 부분을 하나씩 다듬어 주시길 기도한다. 마음속에서 쓴 뿌리가 올라올 때마다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듬어 주시길 기도한다. 좋은 밭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간직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