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음과 드러냄(창 9:22-23)
(창 9:22-23)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노아의 가정에 하나님은 복을 주셨다. 농사해서 다양한 열매를 수확하게 하신 것이다. 노아가 수확하여 얻는 포도로 만든 포도주를 먹고 취하여 벗은 채 잠이 든 것이다. 실수를 한 것이다. 이 실수를 본 함은 두 형제에게 알렸고, 두 형제는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고 조용히 들어가 덮어 주고 나왔다.
문제는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냄 함은 저주받았고, 그 수치를 덮어 준 셈과 야벳은 복을 받았다. 덮어야 할 것을 드러내는 것과 드러내야 할 것을 덮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웃의 허물과 아픔은 덮어 주고, 이웃의 행복은 드러내야 한다. 함께할 때 행복한 일은 나누고, 서로 힘들어 넘어질 일들은 침묵하라는 것이다.
알린다는 표현은 ‘누설하다’는 것이다. 누설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는 말하면 안 될 일을 말하는 경우 누설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땅히 잘 드러내어 알릴 일에 누설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함은 아버지의 벗은 모습을 보았을 때 그것을 형제들에게 누설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 허물을 덮어 주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벗은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 하여 들어갔다. 그들은 아버지의 발이 보일 즈음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 주었다. 이웃의 아픔과 수치는 드러내지 말고 덮어 주라는 것이다. 이웃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이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은 이웃의 아픔과 수치가 나의 아픔이며 수치인 것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셈과 야벳처럼 행동하기보다는 함처럼 행동할 때가 더 많다. 이웃의 아픔을 이야기의 재료로 사용하여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 이웃을 깎아내리고 그 위에 올라서려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욕심이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내가 정상에 올라가서 이웃들을 다스리고 지배하려고 하는 욕망이다. 부패한 본성이 요구하는 욕망대로 살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삶은 무한 경쟁이 아니라 무한 사랑이다.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생명까지 내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무엇이 이웃에게 도움이 될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나보다 남을 더 낫게 보라고 하신다. 그래야 이웃을 대하는 행동이 달라진다.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면 이웃을 무시하기 쉽고, 자꾸 지배하고 군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모범은 섬기는 삶이다. 무한 사랑이다. 내가 가진 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는 것이다. 섬김을 받고 높아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사랑하며 섬기려는 마음이 더 많아지길 소망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의 영적인 입맛이 달라져서 하나님의 사람다운 모습이 하나둘 나타나길 소망한다.
새해가 시작되고 두 주째 시간이 흘러간다. 사람들이 마음먹고 행하는 일들이 이때쯤 잘 깨진다고 한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로 마음먹었던 일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섬기려고 계획한 일들이 잘 실행되길 기도한다. 허물을 사랑으로 덮었던 셈과 야벳처럼 이웃의 허다한 허물일지라도 덮어주는 사랑이 내 안에 가득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