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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요 5:14)

(요 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한 사람의 선택하여 구원하시는 것은 어떤 조건을 갖춘 사람을 특별 대우하시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아무런 조건없이 은혜로 선택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다. 베데스다 못에서 치유를 기다리던 여러 병자 가운데 38년 된 병자를 콕 찝어서 찾아가셨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찾아오시고, 한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다.

치유를 기다리며 누워 있던 38년 된 병자는 절망 가운데 빠져 있었다. 연못에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할 때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이 치유되었다. 그곳에 몰려온 사람들은 세상의 의술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오로지 이 길밖에는 치유될 길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다. 얼마나 그들 마음에 낫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을까.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 자비의 집이라는 뜻이다. 은혜가 넘치고 자비가 드러나야 할 장소에서 무한경쟁의 줄서기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38년 된 병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먼저 들어가고 싶은데 아무도 자신을 그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었다. 어렵게 다가가도 다른 사람이 항상 먼저 못에 들어갔던 것이다.

자신의 환경과 형편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그에게 ‘네게 낫고자 하느냐?’ 물으신다. 마음에 무너진 소망을 다시 세우시는 것이다. 꿈을 꾸게 한 주님은 이어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신다. 무너진 마음을 치유하고 끝난 것은 아니다. 육체의 질병도 치유해 주셨다.

주님은 치유하신 병자를 다시 찾아오셨다. 할 말이 있으신 것이다. 이전보다 더 심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다. 죄가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고 결국은 파산하게 만든다. 주님은 모든 질병이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다. 죄로 인해 부패한 인간 본성이 결국 우리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죄인인 인간이 노력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본성이 부패하여 노력해도 깨끗하게 살 수 없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라고 선언한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이다. 먼저 죄를 처리하라는 말씀이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믿는 믿음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다 칭함, 칭의를 얻었다. 은혜의 선물이다. ‘더 심한 것’은 더 큰 질병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영원한 멸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더 큰 질병이든 영원한 멸망이든 우리들의 노력으로 막을 수는 없다. 주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우리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발견하고 그를 치유하신 주님 앞으로 나올 것을 초청하는 것이다.

몸은 치유 받고 영혼은 지옥 불에 들어가도록 주님 없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라는 말씀이다. 주님만을 신뢰하고 따르는 믿음의 삶을 살라는 초청이다. 나의 죄를 짊어지고 대속의 죽음으로 구원의 길, 살길을 열어주셨다. 그 주님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다. 더러운 옷같은 우리의 의, 선행을 의지하지 않고, 십자가 구속의 은총만 의지하길 소망한다. 그리고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