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9: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귀신은 우리 삶을 좋게 해 줄 것처럼 말하며 자리를 잡지만 실제 귀신이 하는 일은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귀신이 하는 것은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한다. 갑자기 울부짖게 만들고, 경련하며 거품을 흘리게 하며, 매우 상하게 하기도 한다(39절). 귀신이 있어야 할 곳은 인간의 몸이 아니다. 그래서 한 아이의 아버지도 예수님께 나아와 그 귀신을 내쫓아 주기를 구한다(40절).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아 주신다.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신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사람 속에서 사람의 삶을 망하게 만드니 꾸짖으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과 이웃이 인간 이하의 삶, 동물적 삶을 살도록 한다면, 그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책망받을 일이다. 까닭 없이 울부짖고, 경련 중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우리가 서로 협력하여 서로에게 유익한 삶, 도움이 되는 삶이다.
귀신을 내쫓으신 후에 귀신 들렸던 아이를 다시 아버지에게 돌려준다. 아버지가 아이를 계속 사랑으로 보살피고 양육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아이를 위해 최선의 양육을 하여 건강하게 자라가는 것을 보는 것은 부모의 기쁨이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자녀를 위탁하신 이유이다. 우리가 만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매 순간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은 자신을 지으신 분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묵상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없는 이유이다. 한 사람의 삶을 지배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끌고 다니며 자신의 하수인처럼 사용하는 것은 악한 행동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면서 그 자유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지배하고 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이 부르신 부름의 소명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욕망인가, 아니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지나고 있지 않은가? 말씀 속에서 오늘 하루 내가 붙잡고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한다. 말씀 속에서 열어주시는 방향을 잃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