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5: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거라사인의 지방에 살았던 귀신들린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 사람의 특징이 있다. 무덤 사이에 거처한다. 쇠사슬로도 맬 수 없다.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다. 밤낮 늘 소리를 지른다.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다. 벌거벗은 채 살았다. 정상적인 삶이라 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더러운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안에 귀신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럽다’는 표현은 부정하고 깨끗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깨끗하지 않은 영, 악한 영, 부정한 영이 들어왔다. 더러운 귀신은 우리 속에 들어와 살기 원한다. 들어와서 지배하길 원한다. 더러운 영이 우리를 지배하니 우리의 삶을 망가지고, 인간 이하의 삶을 살게 된다.
정결한 생각과 삶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우리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그런 우리의 마음속에는 항상 두 가지 생각이 지배한다.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다.(롬8장) 육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결국은 죽음으로 끌고 간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의 열매를 맺는다. 우리를 참된 진리 가운데 이끌어 간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갈 때 무엇을 따라 살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은 우리의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의 마음에 귀신이 자리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자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였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살아야 한다. 즉 예수님을 마음에 소유하고,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한다.
많은 사람이 영의 생각을 추구하는 삶에 실패한다. 왜? 무엇 때문일까? 인간의 의지가 약하기 때문일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사탄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도 포기하지 않는다. 가까이 있었던 돼지 떼에게 들어가기를 간청한다. 사탄은 이 땅을 떠나길 원치 않는다. 이 땅에 머물며 주인행세를 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지배하길 원한다.
그래서 사탄을 만만히 보면 넘어지기 쉽다. 가장 먼저 점검할 부분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다. 거듭난 신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내면에 영의 생각이 머물도록 자주 마음에 말씀을 담아야 한다. 말씀이 영의 생각을 따라 살도록 이끄는 실제적인 힘이다. 성령이 우리를 말씀으로 다듬을 뿐 아니라 섭리하시며 이끌어가신다. 오늘도 말씀을 가까이한다. 마음에 하나님의 생각이 담아지기를 기도한다. 더러운 생각, 악한 생각들은 깨끗하게 비워지고, 성령의 생각과 그리스도의 향기가 묻어나는 생각, 깨끗한 생각만 내 안에 가득하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