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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두 제자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낙심하여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의 눈이 가려져서 주님의 구속 사역을 다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 제자를 찾아오셨고, 두 사람과 함께 길을 걸어가면서 말씀을 풀어주셨다.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고,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 먹여주실 때 눈이 밝아졌다.

신앙생활의 재미는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영안이 열리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영안이 열리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주실 때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여 우리를 깨우치고 영안을 여시는 방법은 말씀 통해서이다.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어갈 때 깨달음과 함께 성령의 만지심이 있다.

떡을 떼어주심은 성찬의 언어이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이 성찬이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심을 되새김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 때문에 처형된 것이 아니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가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십자가에서 찢으신 몸과 흘리신 피를 묵상하며 참여하는 예식이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복음의 중심은 십자가이다. 예수님이 고난의 상징이지만 우리의 향한 하나님 사랑의 증거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힘이다. 십자가 앞에서 나를 발견하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나의 짐을 벗을 수 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사죄의 은총과 새로워짐, 부활의 능력을 맛보는 자리가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연약함을 대변한다. 우리의 허물과 죄가 없었다면 십자가는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의 허물을 제거하고, 연약한 우리를 강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능력이다.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고 연약한 것을 더 강하게 하신다. 십자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붙잡을 때 능력을 맛볼 수 있다.

십자가는 주님의 사역을 축약해 놓은 증거물이다. 십자가 안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주님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보면서 우리도 제자의 길을 걸어간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를 인도하는 인생의 지도와 같다. 우리의 영안이 열리면 그 무엇보다 예수님이 선명하게 보이고, 십자가의 의미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눈이 밝은 사람인가, 아니면 눈이 가려져 어두운 상태로 살고 있는가?

말씀을 통해 우리가 묵상하는 것은 주님이 행하신 일이다. 영안이 열린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 가운데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재미는 하나님의 손길, 우리와 동행하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때 경험할 수 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찾아오셔서 말씀을 풀어주시고 영안을 열어주신 것처럼 내 눈을 열어주시길 기도한다. 눈이 닫히며 깜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걸어가는 길에서 언제 넘어질지 알 수 없다. 작은 이물질이 들어가도 불편한 것이 우리의 눈이다. 이런 눈이 밝아져 주님의 말씀과 주님이 행하신 일들의 의미를 밝히 알아보며 살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드러내 보이며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