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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2:7)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며 따라 살게 되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따르든지 자기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를 사랑하며 따른다.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어떤 존재가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나를 풍요롭게 할 것인가 생각하며 따른다. 당장 눈 앞에 펼쳐질 결과물을 생각하며 선택한다. 그런데 우리의 선택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일 때 어떤 결과가 주어지는지 분명하게 말한다.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는데 미치지 못한다.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한다. 우상을 따르고 우상을 의지한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세상의 화려함과 우리의 욕구를 자극함으로 우리를 이끌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가는데도 그 끝이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들고 고민하게 만든다.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음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따르지 않도록 자주 말씀하신다. 행동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신다. 가시로 가는 길을 막으시고, 담을 쌓아 그 길을 찾지 못하게 만든다. 분명히 하나님이 경고하시면 그 길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는데 우리는 고집을 피우곤 한다. 하나님의 경고에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가던 길을 멈춰 본래 가야 할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회개이다. 자기가 가는 길이 멸망의 길임을 깨닫고 돌이켜 생명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삶의 방향 전환이다. 걷던 길에 경고등이 켜지면 즉시 멈춰 서서 자신을 살펴야 한다. 나를 살피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겉보기에 따라가도 좋을 것처럼 보여도 그것만 보고 따라가면 실패하기 쉽다.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고 길이 펼쳐져도 요나처럼 멸망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 무조건 열린 길이라고 하여 따라가면 실패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면 반드시 채찍질하시고, 깨닫고 돌이키도록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아버지 집을 떠난 탕자처럼 시작은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하나님을 떠난 삶은 멸망으로 간다. 실패가 분명한데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면 인간다운 삶조차 무너진다. 돼지가 먹는 음식을 먹고자 해도 먹을 수 없는 삶, 돼지와 같은 동물보다 못한 삶으로 전락할 수 있다. 우리의 형편이 갈수록 나빠지고 수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절망의 순간 한 줄기 빛을 보게 하신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 아버지 집에서의 삶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탕자는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많지만, 자신은 지금 굶주려 죽어가고 있음”을 회상했다. 아버지 집에서의 삶과 현재 자기의 삶을 비교하며 되돌아본 것이다.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란 생각이 있어야 돌이킨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좋은 풍성한 삶을 베풀어 주신다. 우리를 누구보다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다함이 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 변함없는 사랑이다. 매일 생활 중에 그 사랑을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유일한 소망이 되는 하나님만 의지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