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두 아들의 비유이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포도원에 가서 일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두 아들의 반응이 서로 달랐다.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예’라고 대답했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가지 않는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싫습니다’ 대답했지만 뉘우치고 가서 일했다. 그렇다면 이 둘 중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는가? 둘째 아들이다. 나는 두 아들 중 어떤 아들처럼 살고 있는가?
❶큰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알고 ‘행하겠다’라고 대답도 한다. 그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다 알고 이해했어도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말씀이 머리에 머물고,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경우이다. 지식만으로 삶의 변화를 이룰 수 없고, 또한 천국에 이를 수도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깨달음에 뒤따르는 삶, 변화된 삶이다.
❷둘째 아들은 처음 마음과는 달리 ‘뉘우치고’ 아버지 말대로 일한다. 이도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자기 생각을 맞춘다. 언행일치는 내 생각과 말에 행동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말에 내 생각과 행동을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내 생각이 바른지 점검해야 한다. 바른 생각에서 나온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❸진정한 의미의 언행일치는 둘째 아들에게서 본다. 언행일치를 위해서는 ‘생각의 뉘우침’이 먼저이다. 그리고 난 후에 ‘행동의 돌이킴’이 뒤따라야 한다. 내 생각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일치해야 한다. 이 작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아무리 우리가 열심히 행해도 곁길로 가는 것이다. 마치 정확하지 않은 측량 도구로 측량하고 일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기준이 잘못되니 그다음의 모든 결과가 그릇된 것이 된다. 먼저 아버지의 뜻을 확실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 후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들의 언행일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❹깨달고 뉘우침을 가지고 행하고자 해도 자주 넘어진다. 우리들의 악하고 부패한 본성이 자주 넘어지게 한다. 거듭난 새로운 본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래서 하늘의 은혜가 필요하다. 깨달은 대로 다 행하며 산다면 무슨 고민이 있겠는가? 많은 경우 깨달았는데도 그렇게 살지 못함이 우리의 고민거리가 아닌가? 뉘우치고도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다면 내 노력과 열심만으로는 변화된 삶을 살 수 없다. 하나님의 도우심, 은혜가 함께 해야 한다. 위로부터 공급되는 은혜로 매일 새로워지는 것이다.
매일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유이다. 내 삶에 하나님 사랑이 묻어나고, 더욱 주님을 닮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열매이다. 하나님의 손길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삶을 살고 싶다. 하나님의 뜻에 기쁘게 ‘예, 제가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고백할 수 있고, 그 뜻대로 발걸음 내 딛을 때 주님의 은혜만 역사하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