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8:3)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노여움은 감정의 한 표현이다. 마음에 서운함과 불편함이 드러나는 감정이다. 정당하게 대접받지 못함에 대한 표현이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화가 났다. 미디안과의 전쟁에 처음부터 부르지 않음에 대한 불만이다. 기드온이 그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인 수도 돌려 보내게 하셨다. 더 이상 불러오려고 해도 부를 수 없게 하셨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기드온의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고 에브라임은 화부터 낸다.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1절) 우리를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 거냐?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함에 대한 불편함이다. 자기중심적인 반응이다. 이기적이고 교만한 반응이다.
기드온은 이런 에브라임의 표현에 유연하게 대처한다. 부드럽게 답한다. 화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랜다. 전쟁의 공로는 에브라임 지파에 있다고 추켜세운다. 방백 오렙과 스엡을 잡은 사람이 에브라임이며, 우리가 한 일은 에브라임 지파가 한 일에 비하며 초라한 것이라고 말한다. 서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에브라임이 한 일이 위대하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상대를 배려하고 높인다. 그 결과 에브라임 지파의 노여움이 풀린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갈등이 항상 존재한다. 갈등이 없는 곳은 없다. 죽은 사람들이 있는 무덤이나 가능하다. 갈등이 생겼을 때 우리의 반응이 중요하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는 화해적 반응이 중요하다. 기드온은 에브라임만 세운다. 노여움이 풀렸지만 그들의 잘못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은 전달되지 않는다. 성경적 화해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화해이다. 그렇다면 기드온의 반응은 강함에 대한 비굴함이다. 이어지는 말씀인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대하는 모습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성도는 당당함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다. 믿음은 강한 자에게는 부드럽게 대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공평을 잃지 않아야 한다. 내 생각, 내 판단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 삶의 결정권, 마음의 보좌,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려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닮은 성도의 삶을 살려내는 비결이다.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바르게 이해한 말씀을 내가 살아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걸어갈 때 참된 화해가 이루진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항상 마음에 품자.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며, 그 뜻대로 살아가길 기도한다. 수많은 갈등이 있는 세상 속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지혜롭게 대응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라도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셨다.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주신 말씀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가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