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19: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은 자기 행복만을 위한 삶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임을 기억하며 자기의 행복과 함께 이웃의 행복을 인정하고 지켜주는 것이다. 경계표에 대해 말씀하신다. 경계표는 자기 소유가 된 땅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알려주는 표시이다. 그 표시를 옮기는 것은 자기 땅을 넓게 사용하려는 이기심 때문이다.
욕심이 잉태하면 죽음으로 몰아간다. 자기만 죽는 것이 아니다. 죄는 전염성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도 함께 오염되게 만들어 죽게 만든다. 다같이 죄를 짓고 살아가는 사회는 죄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탐욕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게 될 것이고, 그 사회는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욕심의 경계가 필요하다. 하나님이 주신 건강한 욕망은 살려내야 한다. 그 욕구가 우리로 하여금 일을 하게 만들고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우리 삶을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풍성하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며 그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라고 하셨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이 있다.
소명 의식은 이 땅에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그냥 땅에 던져 놓으신 것이 아니다. 이유와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왜 이 가정에 내가 있어야 하고, 내가 일하는 직장에,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기에 보내셨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장 좋은 선택을 하며 살기 원하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복한 삶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특히 인접해 있는 사람, 가장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 땅의 경계표를 옮긴다는 것은 자기 소유와 인접한 사람의 소유물이다. 자주 만나는 사람이다. 곁에 있기에 날마다 만나는 사람이다. 이웃이다. 그런 이웃의 소유를 인정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이 말씀을 주실 때는 정확한 지적도와 땅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문서가 발달 되지 않은 때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의 것을 인정하는 마음이 있어야 경계표를 인정한다. 물길을 찾고보니 아슬하게 이웃의 경계표 안에 있다면 조용히 그 경계표를 옮기겠는가. 그런 이해관계가 얽히더라도 옮기지 말라는 것이다. 당장은 이익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피해이다.
서로가 자기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이 되면 결국 그 모든 피해는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세상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 지옥 같은 곳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누구도 지옥같은 세상 살이를 꿈꾸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도 우리가 이 세상을 천국으로 변화시키길 원하신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과 함께하며, 그곳이 천국이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이다. 삶의 원리가 하나님 말씀에 기초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내 삶의 지표로 삼고 사는 것이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않고 존중하며 산다는 것이다. 항상 만나는 사람, 이웃을 존중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며,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다.
독불장군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독불장군은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이웃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선은 버려야 할 성품이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살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을 살려내야 한다. 섬김과 나눔이 회복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내 삶이 이웃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나누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