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느 5:9)
(느 5:9)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공동체가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과 성문을 수리할 때 경제적 어려움이 큰 문제였다.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데 계속된 건축을 위해 세금을 내야하고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몫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공동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존재한다. 어려울 때 가난한 사람은 더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가난한 사람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려울 때를 지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는 자신이 가진 것을 저장 잡히고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형편이 나아지길 기대하며 얼마나 열심히 빚을 갚기 위해 애쓰겠는가. 분명히 온 힘을 쏟아부어 빚을 갚고자 했을 것이다. 나라가 어려우면 가난한 사람들을 더 어렵기 마련이다. 아무리 힘써도 빚이 빚을 낳고 가진 자신들을 위협하는 때가 온다.
그다음은 자신이 가진 자산을 하나씩 팔아서 생계 문제를 해결한다.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가산을 팔 때의 심정을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희년 제도를 통해 한 세대가 가지 전에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보내게 하신 것이다.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공동체가 함께 건강하게 생활하길 원하신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해도 해결되지 않을 때는 마지막 남은 자신들의 몸을 종으로 파는 것이다. 다른 집의 품꾼이 되어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팔리고, 그다음은 자녀들까지 팔려 가는 것이다. 종으로 팔려 갔을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희년이 되었을 때 종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길 원하면 먹을 것을 주어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것이다.
가난의 대물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가 아니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도태된 사람들은 사회 변두리를 밀려나면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의 연약함, 어려운 환경을 항상 돌아보라고 하신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구제를 하며, 정기적으로 자기 수입의 일부를 때어 나누라고 하신다. 3년에 한 번씩 드린 십일조 규례이다.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을 위해 함께할 때는 사람들이 이런 정신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래서 사회 지도층 인사들, 그리고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각기 형제들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며 어려운 사람을 더 큰 어려움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방인의 손에 팔린 사람들도 되찾아오기 위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힘을 다해 잃었던 주권과 자산들을 되찾게 하셨다. 행복한 공동체를 위해서이다.
하지만 높은 이자를 취하며 결국 형제를 다른 사람의 종으로 팔려 가게 하는 것은 악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런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라고 한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행동이 옳은지 스스로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지금 너희들이 하는 행동이 좋지 않다고 분명하게 책망한다. 행동을 바꾸라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고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압제하지 말라는 것이다.
느헤미야의 책망과 권고를 받은 사람들은 행동을 바꾼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지나친 이자를 받은 사람들은 받은 이자 가운데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기로 한다. 건강한 공동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자기 잘못을 깨닫고 변화된 삶을 살기로 행동을 바꾼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혼자만 잘사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골고루 잘사는 것이다. 오늘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함께 나눠야 할 것을 생각하며 풍성한 섬김만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