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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17:11)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

욥이 마음에 품은 소원이 있었다. 자신이 의롭게 살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지 않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의인이 힘을 얻고 악인 심판받는 것이다.

욥의 소원은 오늘 우리들의 소원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와 환경을 볼 때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사회 모든 영역은 아니지만 젊은이들의 꿈이 꺾이고 있다.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오늘을 잘 살면되고, 오늘을 즐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바라볼 소망이 꺾이니 현실에 집중하고 현실을 즐기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꿈, 비전, 언약의 말씀’이 없는 백성은 망할 수밖에 없다. 세상의 강력한 불의가 말씀을 의심하게 한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이 때로는 맞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럴 때에는 내가 생각하고,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유혹한다. 언약의 약속과 더불어 꿈도 포기하게 만든다.

욥은 ‘내 마음의 소원’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마음속에 흔들리지 않게 간직한 소원마저 흔들린다. 우리는 환경과 이웃 사람에게 영향을 받으며 산다. 꿈, 소망의 근거가 내 마음에 있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성도는 내 마음에 근거를 둔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산다. 하나님이 주셨기에 근거도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은 자주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그 비전을 발견하게 하신다.

내 마음의 소원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다시 말씀의 토대 위에 서야 한다. ‘다 끊어졌다’ 외친다. 남은 것이 없다. 때때로 욥처럼 남은 것이 없도록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다. 다 끊어졌다 외칠 수밖에 없는 형편을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욥은 외친다.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17:15) 어디에서도, 누구도 자신을 보면 희망을 갖을 수 없다는 고백이다. 그렇다. 나에게는 소망이 없다.

나의 희망은 하나님께 있다. 내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하루를 살면서 내 필요와 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한다. 우리 성도의 희망은 우리 형편과 상황에 따라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와 함께 죽지 않는다. 주님이 주신 가장 확실한 소망은 영생의 소망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움을 만날 때 소망없는 사람처럼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생명을 앗아가고 빼앗을 수 없는 소망이 있다. 영생의 소망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권면한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

우리는 소망 없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 우린 소망을 가진 자들이다. 영생의 소망이 이 땅에서 힘든 삶을 만날 때 진면목을 발휘하는가? 내 삶이 만나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늘 소망은 꺾이지 않는다. 하늘 소망이 이기게 한다. 내 마음의 소원은 무엇인가? 영생인가? 생명이 살아나는 현장인가? 오늘 삶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이루시길 원하시는가? 만나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주님의 소원이 곧 내 마음의 소원 되어 험한 세상살이 넉넉히 이겨내길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