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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다. 아브라함이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여 대접한다. 식사 후에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어디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난 후에 “내년 이맘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찾아 오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그때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알리신 것이다.

사라는 장막 문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웃는다.(12절) 자신의 나이가 많아 생리가 끊어졌고, 아브라함도 늙었는데 자신에게 무슨 낙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믿어지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고 웃은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능하지 못한 일이 없다.(14절) 개인의 상황과 형편을 뛰어 넘으신다. 세상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 하나님에게 못할 일이 있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은 아브라함의 가정,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가정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믿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르게 이해할 때 생기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일하셔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것이다. 사라는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 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유한한 인간은 무한한 하나님의 다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을 다 이해하려 하는 것이 무모한 일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만큼 이다. 하나님이 열어서 자신이 누구신지 보여주지 않으시면 알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을 우리는 계시라고 한다.

계시에는 일상 생활 중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도록 보여주시는 일반계시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인 성경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시는 특별계시가 있다. 일반계시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모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손길을 좀더 선명하고 명확하게 이해하지만 어떤 사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성경은 그 차이를 거듭남의 차이로 설명한다. 하나님을 만나고 영적인 안목이 열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이다. 거듭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손길과 말씀이 하나씩 열려서 보이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손길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리고, 이해의 폭이 열렸기 때문이다.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두려워한다. 자신이 속으로 웃은 일을 어떻게 다른 사람이 알겠는가 생각하고 부인한다. 그때 하나님은 사라에게 분명하게 확인하신다. “네가 웃었느니라” 그렇다.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다. 아무리 부인해도 하나님은 명확하게 보고, 명확하게 알고 계신다. 이 말씀에 사라는 자신의 속까지 살피시는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생각해 보자.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살피시고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매일 하나님 자녀답게 사는 길은 하나님을 향한 눈과 귀를 열어놓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하나님이 일하시는 손길을 보여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