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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20: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다윗의 길로 행했던 히스기야 왕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조롱하며 위협할 때 기도로 막아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를 섬멸하심으로 승리를 맛보았다. 죽을병에 걸렸을 때도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함으로 그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았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유익을 직접 경험한 왕이다.

히스기야가 겪은 일련의 일들은 주변에서 보면 대단하게 보인다. 자기보다 더 힘이 있고, 자기 나라보다 더 강한 군대를 단숨에 꺾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된다. 분명히 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난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았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산 것이다.

바벨론도 이런 히스기야의 이야기를 듣고 가까이하고 싶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유다의 히스기야와 손을 잡으면 앗수르의 위협에서 벗어나 더 안전하고 힘있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이 문병 사절단을 준비하여 편지와 예물을 보낸다. 분명히 히스기야 왕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때 히스기야 왕은 실수한다. 항상 어려울 때보다 성공했을 때가 더 위험하다. 히스기야 왕도 죽을병에 걸렸을 때는 다른 선택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붙잡았다. 하지만 대승을 맛보고 생명을 연장받았을 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할 그때 넘어진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선포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교만하게 행동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히스기야의 행동에 대해 심판의 메시지를 주신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심판의 말씀을 들은 히스기야 왕의 반응은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다”였다. 자신이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다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 선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는 심판의 이야기가 선포되었는데 그 말씀이 선하고 좋다고 반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심판의 메시지가 선포되면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는다. 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옷을 찢고 대신 베옷을 입고 겸손히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하며 기도한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예측 불가의 행동을 한다. 이해할 수 없다. 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이다. 자기 자녀가 적국의 포로가 되어 그 나라 왕궁의 환관이 된다는 것이다. 어째 이 말씀을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가 사는 날 동안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의미의 반응이다. 이기적이다. 자기중심적이다. 나만 잘되면 된다는 것이다. 가족마저도 생각하지 않는다. 자녀가 불행해져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극도의 이기주의이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을 보는 것 같다. 신앙은 나만 잘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건강하게 서서 섬김으로 이웃을 신나게 하고, 이웃이 생명의 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신앙은 내가 주 안에 서 있으므로,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리고 믿음의 길을 걸어감으로 먼저 내가 서는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 이웃이 나로 인해, 내가 믿는 하나님으로 인해 복을 받고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어떤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나의 믿음과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삶인가? 이기적인 삶을 내려놓고 주님을 닮아 섬기며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