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20:6) 그 날에 이 해변 주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
유다는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의지하기보다는 가장 가까이 도움이 될 수 있는 애굽을 의지하고 함께 힘을 모아 앗수르를 대적하고자 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힘이 있는 다른 나라를 의지한 것이다.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의지하고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존하심을 다양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에 말씀해 주셨다. 역사를 통해 조상 때부터, 나라가 시작하는 것까지 하나님이 개입하심을 선명하게 알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런데도 유다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 나라, 힘이 있는 나라를 의지하고 있다. 거기에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서 애굽이 앗수르에게 패망하도록 하셨다. 그러니 유다는 멸망할 나라를 붙잡고 있는 모습이다. 어리석은 행동이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누구를 의지하며 살고 있는가? 위기와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은 어디인가? 믿었던 사람이 기대한 것과는 달리 배신하고, 믿었던 나의 배경과 조건이 위기의 순간 아무 쓸모 없는 것을 경험하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세상 그 모든 것들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데 유용한 것들이라는 관점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물질과 피조물들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우리 삶을 보다 행복하게 해 주시기 위함이다.
오늘 하루도 행동과 삶을 통해 내가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은 무엇인지 더욱 분명하게 점검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입술만의 고백이 아니라 행동으로, 생활 속에서 인정하는 모습이 살아나길 소망한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길, 말씀의 길을 걷기를 기도한다. 시선을 세상의 물질과 풍요에 빼앗기지 않고 주님이 이 땅에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다스림이 내 삶이 실현되고 있는지 살피면서 살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