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왕상 18:9) 이르되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엘리야가 아합왕을 만나기 위해 나아간다. 그런데 하나님은 직접 만나기 전에 아합 곁에서 일하는 오바댜를 사용하신다. 오바댜가 엘리야를 만난 후 아합왕에게 엘리야와 만날 장소를 알리는 것이다. 왕이 왕궁에 있기에 왕궁에 그냥 찾아가면 될텐데 엘리야는 아합왕이 찾아오게 한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아합왕에게 찾아오게 한다.

오바댜는 하나님의 일에 동역자로 부름을 받는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가서 자신을 어디에서 만났는지 보고하고, 아합왕을 데리고 오라는 요청을 받는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역자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을 사용하신다. 오바댜은 어려서부터 경건한 삶을 살았고, 아합왕이 잔인한 살인을 할 때 오바댜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일꾼, 선지자들을 살린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을 자기의 이익과 평안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이웃과 나눌 줄 알았고, 하나님의 일에 기쁨으로 사용할 줄 알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신 것은 우리만 잘 먹고 잘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은 것처럼 이웃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우리를 사용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오바댜가 엘리야를 만났을 때 처음은 기쁨이었지만 그 후에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엘리야를 만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아합왕이 자기에게 엘리야를 만났는지 묻는다면, 그리고 엘리야가 여기 있다고 전달하고 만남을 주선했는데 엘리야를 찾지 못한다면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아합왕의 칼날이 강력한 권력의 상징이었고, 말 한마디면 누구든지 죽어나가는 때였다는 뜻이다. 그러니 오바댜 역시 죽음의 두려움이 있었다.

오바댜는 죽음이 우리의 죄 때문에 주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죽음의 위기가 찾아왔다고 느꼈을 때 제일 먼저 자신의 죄를 돌아본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직 스스로 깨닫지 못했는데 무슨 죄를 지었는지 말해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실제로 크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나를 위기 가운데로 몰아넣느냐는 질문이다. 분명히 오바댜는 죽음의 위협을 느꼈을 때 자신이 지은 죄가 있는지 제일 먼저 살폈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 나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은 지혜로운 행동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는 우리의 욕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욕심이 자라고 또 자라서 죄를 짓게 된다. 우리 마음속을 잘 살펴서 욕심이 죄를 짓는 행위로 표출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악한 것은 흉내도 내지 말라고 하셨다. 악을 행하는 것은 당연히 피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라 하신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물질, 재능과 열심, 우리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자랑하는 삶을 살라 하신다.

오늘 하루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돌아본다. 주변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보면서 그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길 소망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 하나님과 말씀 앞에 나를 살피며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의 손길에 쓰임 받길 기도한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 삶을 드리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