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3: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님이 불법적인 판결에 따라 십자가에 처형된다. 얼마든지 불의를 바로잡을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다. 온갖 조롱과 비난을 묵묵히 감내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다. 히브리서 저자의 고백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고 도우시기 위해 그 길을 걸으셨다.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간구하는 우리를 돕기 위함이셨다.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예수님을 보면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하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에게는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신다. 주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당당하게 길을 가지면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자기 필요와 욕심을 위해 살아가는 자기 자신과 자녀를 돌아보면서 결산의 날을 준비하며 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골고다에 오르셨을 때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했다. 예수님이 처형당할 때 예수님의 좌우편에 함께 처형된 사람들이 있었다. 행악자들이었다.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일이 되어 정당한 절차에 따라 처형되는 악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한 행악자는 예수님을 비방하지만 다른 한 행악자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 고백을 한다.
어떤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남의 탓을 하고 남을 비방하지만, 어떤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더 많이 섬기고 베풀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삶이 더 복된 삶일까. 주님은 우리에게 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복이 있다고 하신다. 작은 것도 나누면 더 큰 기쁨이 된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행악자는 예수님께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 하나님 나라에 당신이 들어가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기억해 달라는 것은 구원해 주시길 기도하는 것이다. 이제껏 잘못 살았고, 십자가 처형을 받을만한 행동을 하였지만, 이제는 회개하고 구원의 은총을 구한다.
그에게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의 죽음이 자신들처럼 자기 죄에 대한 죽음이 아님을 알았다. 예수님이 죽음을 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실 것도 알았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실 것도 알았다.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것을 믿었다. 이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었기에 이 강도는 조심스럽지만, 겸손하게 예수님께 은혜를 구한다.
조금 때가 늦은 듯하다. 그러나 때늦은 회개는 없다. 우리의 목숨이 있는 한 그렇다. 이 땅에 있는 동안 회개해야 한다. 주님의 은혜를 붙잡아야 한다. 은혜의 때에 주님께 기도해야 하고, 은혜의 때에 사람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 생명이 끝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들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고, 힘껏 주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야 한다.
주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다. 나의 허물과 죄 때문에 징계받으셨고, 채찍에 맞으셨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 때문에 오늘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 다시 조용히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한다. 내가 믿고 따라가는 주님을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따르게 하옵소서. 주님, 나를 기억하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깨어 기도하며 흔들리지 않고 하늘의 소망을 갖고 주님 걸으신 그 길, 십자가의 길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