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09: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대적들의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인의 선택은 기도였다. 선으로 상대방을 대해도 대적하고 악을 행할 때 달리 무엇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악하고 거짓된 입으로 속이는 말을 하고, 까닭없이 미워하는 말로 공격하는 적을 상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자포자기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때 하늘을 바라본다.
하나님께 기도한다. 기도는 가장 소극적인 것 같지만, 실상은 가장 적극적인 대처이다. 그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때 모든 상황을 꼼꼼히 살피시고 공의로 판단하시는 분이 계시다. 하나님은 정말 대적이 거짓말로 공격하고, 말도 안 되는 행동으로 괴롭히는지 아신다. 우리가 말하고 드러내지 않아도 다 알고 계신다.
그래도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알고 계셔도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면서 다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며,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는 순간에도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확인하게 된다. 기도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생각하게 되고 그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내 이야기만 하나님 앞에 쏟아부으면 경험하기 어렵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리높여 기도하지 않아도 다 아신다. 굳이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상처난 마음 때문에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아신다. 기도는 그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 내 마음을 쏟아 놓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기도여야 한다. 나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목청껏 외치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내 이야기도 털어놓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기도 하다. 마음 아파하는 일들을 털어놓을 때 조용히 나를 감싸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모든 길이 막히고 해법이 없어 보여도 하나님의 위로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이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대적을 심판해 주시길 기도한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호소이다. 하나님께서 부조리하고 부당한 사회의 모습을 바로 잡아 주시길 기도한다. 이 땅의 공의를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도한다. 한 사람에 대한 악행은 그 사람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악은 악을 낳고, 죄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전염되듯 퍼져가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들 가운데 억울해하는 사람이 많고, 그 억울함을 정당한 방법이 아닌 폭력이나 괴롭힘으로 반응하는 사회는 공의가 무너지는 사회이다. 공의가 바로 서는 사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회이다. 신앙은 결코 한 사람의 마음이나 가정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야 한다. 무엇이 진리의 길인지를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따르는 성도가 있는 사회는 소망이 있다. 성도는 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가치관이 바뀐 사람이다.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며 사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제 몫을 하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정과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길 소망한다. 공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쉬지않고 기도하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