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8: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기드온은 미디안과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이스라엘 백성이 취한 전리품 중에서 금귀고리를 내어달라는 요청을 한다. 그렇게 얻은 귀고리를 사용하여 에봇을 만든다. 금으로 만든 에봇이다. 금으로 만드니 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착각이다. 무엇이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행동 원리이다. 하나님은 에봇을 금으로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다. 에봇은 하나님이 정한 대로 만들어야 한다. 재료부터 양식까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해야 한다. 사사롭게 만들면 안 된다.
기드온은 백성들에게 얻은 금 1700 세겔로 에봇 하나를 만들었다. 1700세겔이면 약 20kg이다.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화려하고 멋진 에봇이다. 문제는 백성들이 금 에봇을 음란하게 대한 것이다. 음란이란 단어는 간음하고 매춘할 때 쓰이는 단어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봇을 통해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을 더욱 잘 섬겨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했다.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에봇을 우상처럼 숭배한 것이다.
에봇은 하나님과 교통하고, 예배할 때 제사장이 입는 옷이다.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입었던 옷이다. 기드온은 금 에봇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음을 드러내려 했을까?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에봇의 용도를 변경하고 있다. 제사장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제사장 직무를 감당할 때 입는 에봇을 장식용으로 바꾼 것이다. 인간을 자랑하고 드러내 보이는 데 사용한다. 에봇은 진열용, 장식용이 아니다.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기념물이 아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용도를 변경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자. 내게 필요하다면 너무 자주 용도변경을 하는 것은 없는가? 하나님을 드러내야 할 것들을 나를 자랑하고 드러내는 도구로 변질시키지는 않는가? 우리 안에 숨겨진 교만이 우리를 넘어뜨린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마음, 타락한 그러나 교묘하게 숨겨진 마음이 쉼 없이 우리를 공격한다. 영적인 싸움이다.
왜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했을까? 날마다 죽지 않고는 내가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기 때문일까? 내가 죽지 않고는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예수님을 자기의 구원자와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일 때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다.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사람이다. 이것을 잊어버리니 자주 실수하고 넘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넘어지고,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보자. 하나님 앞에 서 있어도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하자.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만 의지하자. 용도변경의 유혹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말자. 오늘 하루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