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25:27)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 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잘못해서 심판하실 때도 구원계획을 갖고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님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성품이다. 어느 한쪽만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면 안 된다. 사랑과 공의가 함께 나타나기에 믿고 따를만한 분이시다. 결코 인정에 끌려 행하는 인간처럼 실수하지 않고 언제나 공평하게 우리를 대하신다.
유다를 심판하시고 멸망하게 하신 하나님은 시간이 흐르고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신 후에 회복의 은총을 베푸신다. 단번에 다 주시지 않고 서서히 회복시켜 주신다. 심판하실 때도 한 번 잘못했다고 단번에 심판하지 않았다. 계속 회개의 기회를 주어도 돌아오지 않자 결국 심판했다. 우리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거듭나서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단번에 거룩과 하나님의 닮은 성품이 나타나지 않는다. 서서히 드러난다. 거룩하게 되어가는 것이다. 성화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살이 전체를 통해 진행된다. 하나님 품에 안길 때까지 진행된다. 다양한 아픔과 어려움, 기쁜 일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다듬어져 가는 것이다. 분명한 목표는 하나님을 닮을 때까지이다.
왕의 머리를 들게 하신다. 갇혔던 옥에서 풀려난다. 폐위된 왕이 복권된다. 바벨론에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여 준다. 일평생 왕의 양식을 먹게 한다. 필요한 것들은 종신토록 끊어지지 않게 공급해 주신다.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어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 것을 분명하게 느끼도록 사랑하신다.
여호야긴이 한 것이 없다. 분명히 감옥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것도 37년이란 세월을 통해. 하나님은 때가 되면 풀어주시고, 복권시켜 주시고, 채워주신다. 심판 중에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긍휼이다. 그 사랑이 오늘을 살게 한다. 매일 넘어져도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이유이다.
우리 삶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등진 삶이 있어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백성답게 살 수 있다. 여호야긴 왕은 37년을 갇혀있었다. 인고의 시간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된다면 우리를 그렇게 살지 않아야 한다. 심판 후의 긍휼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갈망하며 하루를 살아야 한다.
심판이 아니라 은혜의 삶을 살자.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바로 그 은혜, 그 사랑 안에서 주님 손을 붙잡고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걸으면서 주님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맞춰가는 것이다. 묵묵히 따라 걸어가는 길이 믿음의 길이 되고, 능력의 길이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은 누구보다 한 영혼의 소중함을 알고, 우리가 하나님처럼 영혼 사랑의 열정으로 살기 원하신다.
우리 안에 심겨진, 회복된 영혼 사람의 열정이 세상의 변화시키는 힘이다. 어떤 힘보다 우리가 더 갈망할 것은 사랑과 열정이다. 사랑이 흘러넘치고 열정이 살아있어야 성도다운 삶이 살아난다. 하나님 앞에서 내 안에 일어나길 원하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회복, 변화, 긍휼, 동행, 순종, 거룩” 등등.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그날을 고대하며 믿음으로 살기를 다짐하며 은혜를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