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족보 이야기는 재미없다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어떤 책이든지 첫머리에 긴 족보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다지 흥미를 갖지 않고 그 책을 몇 자 읽다가 덮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마태은 예수님을 소개하는 복음서의 시작을 족보 이야기로 연다. 어쩌면 족보를 보는 순간 덮어버릴 수도 있는데 그것을 제일 먼저 기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족보는 한 사람의 뿌리와 가문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분이 어떻게 이 땅에 오셨는가? 예수님의 정체성, 예수님의 뿌리를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님의 계보를 매우 규칙적이고 정형화된 형태로 소개한다. 마태의 마지막 결론처럼 정교하게 열네 대씩이다. 족보에 무언가 의도적으로 자신이 담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았다는 뜻이다.
족보에는 많은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이름은 단순히 몇 단어의 조합이 아니다. 이름에는 그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살아온 역사가 담긴다. 결국은 한 사람의 자서전이며, 한 가문의 자서전이다. 우리 편에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지나가기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기록된 사람의 이름과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생각하면 생생한 역사의 증언이 드러날 것이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하면서 의도적으로 열네 대씩 기록한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그리고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각각 열네 대로 기록한다. 정확하게 열네 대만 흘러온 것이 아니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마태는 의도적으로 세 단계로 구분하여 기록한다.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약속의 자녀로 오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한다. 예수님이 사생자나 근본 없는 사람이 아니라 구약시대부터 하나님께서 약속한 대로 이 땅에 오신 약속의 자녀, 우리의 구원자 메시아가 되심을 증언한다.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가장 이상적인 이스라엘의 왕이며 영원한 왕인 다윗왕의 후손이라고 증언한다.
나라가 세워지기 전 족장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아브라함을 소개하고, 왕정 시대가 시작되어 나라가 멸망하기까지 중심인물로 다윗을 소개한다. 그리고 포로 생활에서 이스라엘을 재건하고 새롭게 할 영적 이스라엘의 중심인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새 시대의 여는 사람, 영적 이스라엘을 불러 세울 영원한 왕으로 예수님을 소개한다.
우리의 뿌리는 무엇인가?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믿고 따르고 있는가? 영적 이스라엘을 불러 모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고, 영생의 삶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원자로 믿고 있는가?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여 자녀 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새로운 삶을 살게 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풍성한 삶을 열어주기 위해 오셨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드러내고, 주님과 동행하는 풍성한 삶을 드러내며 예수님과 복음만 증언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