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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4:3)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회개의 기회를 주어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는 한두 번이 아니다. 반복적으로, 다함이 없는 사랑과 긍휼로 기회를 주신다. 하지만 그래도 끝내 자기 길을 걸어가면 심판의 채찍을 드신다. 끝내 기회를 잃고 불순종하면 어떤 삶이 찾아오는지 돌아보게 한다. 하나님이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는 경고의 나팔 소리를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광야의 타조와 같다고 표현한다. 광야의 타조는 모래에 알을 낳은 후 버려두고 돌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처럼 이스라엘이 자기 자녀들을 낳고 돌보지 않고 버린다는 것이다. 돌보지 않는 것이 닮았다. 심지어 극한의 어려움에 빠졌을 때는 돌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 자녀를 삶아 먹는 패륜까지 저질렀다.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인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 새끼를 아끼는 동물보다 못한 삶으로 변했다. 마치 변하면 안 될 금이 빛을 잃는 일처럼 자녀를 위하는 부모의 부성애와 모성애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 그들의 본성이 잔인하고 사랑이 메마른 존재이기에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가? 멸망의 순간 자비로운 부녀들이 어떻게 자기 자녀들을 자기들의 손으로 삶아 먹었을까?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 죽음 앞에서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다. 결국 다 굶어 죽을 것인데 우리 아이로 인해 조금이라도 위로받자는 의미에서 삶아 먹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녀를 삶아 먹으면서 연장한 생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 세속에 물들고 세상사람들처럼 형편과 환경에 지배받고 있다.

믿는 사람들에 찾아오는 가장 큰 시험 거리도 이와 비슷하다. 형태는 달라도 결국 먹거리 문제이다. 먹고 살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돈 몇푼 얻고자 생명을 하찮게 생각하고 살인한다. 인간성이 말살되고, 인륜이 무너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일용할 양식을 주시지만 우리는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환경과 형편을 탓하며 욕망을 추구한다.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상황과 필요를 따라 행동하면 믿음을 지키기 어렵다. 작은 틈새가 큰 어려움을 만들고 믿음을 무너뜨린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작은 일이 결국 우리 신앙과 삶을 무너뜨린다. 신앙의 작은 양보가 큰 절망을 만든다. 그래서 항상 말씀의 거울에 나를 비추어 보고, 살펴야 한다.

오늘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를 흔드는 작은 틈새는 무엇인가? 나를 광야의 타조와 같은 존재로 변질시키는 것이 무엇인가? 이른 새벽과 늦은 밤을 하나님과 교제하며 본을 보이시는 주님을 바라본다. 주님에게서 삶을 배운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완수를 위해 아버지가 주신 시간을 관리하고 최선을 다해 헌신한다.

오늘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한다. 사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말씀 묵상과 기도, 순종과 섬김, 내려놓음과 헌신, 사랑과 희생을 살려내는 것이다. 주님의 삶을 묵상하며 생활 중에 만나는 문제들을 풀 하늘의 지혜를 구한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며, 하나님만이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분임을 믿고 살기를 기도한다. 그 하나님의 자비를 맛보고, 하나님의 사랑만 자랑하며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