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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성도가 거룩함이 이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꿈꾸는 일이다.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거룩을 살아내는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분명히 예수 믿고 거듭난 삶을 산다고 하는데 거룩이 묻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론 정말 거듭난 것인지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거룩이 묻어나지 않는 삶 때문이다.

바울은 우리들에게 거룩함에 이르는 길을 소개하면서 거듭남의 의미를 다양하게 설명한다.

❶우리의 육신이 연약하다. 약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넘어진다. ‘넘어진다’라는 표현을 바울은 ‘우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준다’로 묘사한다. 우리들의 육신이 약하기에 얼마든지 이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❷본문을 보면 바울은 ‘전에’와 ‘이제는’으로 구분한다. 전에는 거듭나기 전이다. 이제는 거듭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이다. 거듭나기 전 우리들이 연약하여 자주 우리 지체는 죄에 내어 준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져야 한다. 예수님을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는 존재가 달라졌다.

❸눈여겨 볼 단어는 ‘내준다’이다. 헬라어 단어는 바로 옆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증명해 보인다는 뜻이다. 우리들의 지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통해 우리가 성도인지 아닌지를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누가 증명해 보이는 것인가? 하나님이 아니다. 본문에서 주어가 ‘너희가’이다. 내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❹우리는 의지적으로 우리들의 지체를 무슨 일에 사용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자꾸 죄짓는 일이면 안 된다. 불법이 아니라 ‘의’를 이루는 일이 되어야 한다. ‘의’는 하나님이 옳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부여하신 원리와 뜻을 따라 사는 것이다. 고장 난 ‘죄 된 본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시고 심으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피조물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점검해야 한다.

❺내어 주는 데 ‘종’으로 내어 주는 것이다. ‘종’은 자기 의지와 뜻을 주장하면 넘어진다. ‘의’에게 종으로 내어 주어야 한다. 의를 이루기 위해 내 생각과 판단은 내려놓고 명령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다. ‘종’이 될 때 마음이 편하다. 자꾸 내 삶의 주인이 되려고 하니 다툼이 생기고 거듭났다고 하는데도 인간의 추함만 나타난다. 내 스스로 죄를 지으려는 본성을 해결할 수 없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삶을 해결할 수 없다. 하나님께로 방향전환을 했다면 의에게 종이 되어야 한다.

❻이런 삶에 ‘거룩’이 묻어난다. 거룩함에 이르는 길이 분명하다. 거듭나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화는 우리들의 몫이다. 매일의 삶을 통해 의에게 종으로 내 지체를 내어 주어야 한다. 의지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내 욕심과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택을 해야 한다.

하루 삶을 통해 거룩한 삶이 묻어나고,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 드러나기를 소망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나의 지체를 하나님의 뜻에, 그리고 의로운 삶에 종으로 드리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