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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1:48)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말씀하심으로 라반은 야곱에 대한 공격을 멈춘다. 라반이 마음에 있는 말을 하고, 야곱도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한다. 서로에게 서운하고 아쉬움이 남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서로들 사이에 증거의 돌을 세우고 언약을 한다. 그 언약을 세운 것을 기념하여 돌무더기를 이름하여 “여갈사하두다, 갈르엣”라고 서로 부른다. ‘증거의 무더기’란 뜻이다. 라반은 이곳을 한 번 더 이름하여 “미스바”라 칭한다. ‘감찰하는 곳, 망대’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서로를 감찰하심을 기억하며 서로 해하지 않기로, 경계를 넘어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언약을 맺은 것이다.

외삼촌과 조카 관계이다. 서로의 불편함이 도를 넘어섰기에 언약을 맺고, 증거의 돌을 세워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가장 큰 문제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다. 그러니 서로 믿을 수 있는 언약을 세우고, 증거의 돌을 세운 것이다. 이처럼 불신은 서로의 관계를 깨뜨린다. 그런 불신이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야곱은 속아서 한 결혼, 14년의 봉사, 품삯을 결정하고 일하는 6년 동안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는 일이 불신의 이유였다. 라반의 입장에서는 자신 보다 야곱의 재산이 더 많이 늘어나는 상황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자신을 속였을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두 사람 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인간의 욕심이 자리하고 있다.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취하고 누리기 위해 탐욕을 부리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욕심이 자라서 죄를 낳고, 죄는 결국 우리를 사망으로 이끌어 간다고 증거한다. 좀 더 가지고 누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문제는 그 마음이 자기중심성과 만나서 자기만을 위한 삶으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삶을 나아가는 것이다. 결국, 관계가 불편해지고, 언약을 맺지 않으면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아간 것이다.

주님은 이런 본성을 가진 우리를 구원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내 것을 챙기는 욕심 대신에 이웃을 섬기는 풍성한 사랑의 본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우리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이 사셨던 삶을 본받아 섬기며 살라 하신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구원자로 모시고 살아갈 수 있다. 내 노력과 열심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 성령의 내주하심을 인정하고,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가길 원하신다. 코로나19가 이제 지역사회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이웃을 배려하고, 이웃을 섬기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할 때이다. 오죽하면 국회에서 의심환자가 검진을 거부할 때 징역형을 구형할 수 있다는 법률을 개정하려 하겠는가. 주님의 마음, 이웃을 배려하고 존중히 여기는 섬기는 마음, 오히려 내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으로 하루를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