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2: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한 레위인이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는다. 당시는 아기를 낳았을 때 여아는 기를 수 있어도 남자 아기는 기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애굽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따라 모든 백성에게 남자 아기는 다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명령이 주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아들을 낳아 죽이지 않고 기른다. 자신들이 더 기를 수 없을 때까지 기른다. 아이가 자라감에 따라 숨길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부모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되었다. 이제는 아기를 포기해야 하는가,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부부가 선택한 것은 아이를 위해 갈대 상자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갈대 상자 안쪽을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여 물이 상자 안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방수처리를 한다. 재료가 갈대이다. 오래 버티지 못할 환경이다. 아기를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 갈대 사이에 두었다. 쉽게 떠내려가지 않도록,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도록 한 것이다. 아마도 당시 바로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 아기가 생명을 보존할 수 있도록 공주가 자주 방문한다는 지점을 생각했을 것이다. 섬세한 준비를 하며 아기를 떠나보낸다.
우리들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살리기도 하고 죽이실 수도 있다. 우리 시대는 생명까지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자신의 생명은 소중히 여기면서 이웃의 생명은 하찮게 생각하는 생명경시 사상이 만연한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에게는 생명을 우리 마음대로 할 권한이 없다. 부부는 남자 아기를 낳았을 때 아기를 그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적합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을 것이다.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때까지 숨겨서 길렀다는 뜻이리라. 갈대 사이에 갈대 상자를 둔 것, 안을 방수처리 한 것도 아기의 생명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손수 보존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들 부부는 부모로서 할 최대한 노력을 한다. 생명을 존중할 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힘써 노력한다.
오늘 우리 사회는 생명존중 사상이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이다. 이웃의 권리와 인권을 무시하고 ‘갑질’이 횡행하고 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웃의 생명을 해한다. 가장 성경적 삶이 묻어나야 할 믿음의 공동체에서도 이런 일들이 나타난다. 우리는 어떻게 생명을 존중하며 살 수 있을까? 내가 해야 할 최선의 노력은 무엇일까?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이웃에 대한 배려와 신앙의 후원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목숨을 걸고 생명을 지켜내고자 몸부림친 레위인 부부의 삶을 다시 묵상한다. 교회 안에서, 사회 속에서 내가 목숨 걸고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를 소망한다. 무엇이든 쉽게 결정하고 쉽게 움직이기보다 신중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순종하며 살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