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왕상 1:49) 아도니야와 함께 한 손님들이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지라

솔로몬의 즉위식 이야기를 들은 아도니야와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먼저 놀랐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놀랐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도니야와 함께하면 자신들도 유익하고 왕과 같이함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예상치 못한 솔로몬의 즉위식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반응은 따르겠다고 다짐했던 아도니야를 떠난 것이다. 그들은 각기 갈 길로 갔다.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아도니야를 향한 충성 서약을 뒤로하고 목숨을 지키고자 자신들의 길로 도망한 것이다. 위험이 다가오고 자신들에게 유익보다는 피해가 더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도망한 것이다.

각기 갈 길로 갔다. 각자가 원하는 길로 갔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원하는 길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소신껏 행동하고 지키는 사람을 신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신껏 하는 행동이 때로는 이기적인 선택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결정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다. 자기에게 유불리를 따져서 결정하는 것이다.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이다.

하나님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경계하신다. 자기만을 위하고 자기 필요를 따라가는 삶은 부패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그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이웃의 유익을 해치고, 자기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이웃의 것을 강탈하는 악행을 주저하지 않고 행한다. 자기중심적 삶, 자기중심성은 죄의 본질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만을 위하지 말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도 사랑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이타적인 삶이다.

좋은 친구는 어려울 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위기의 순간에도 피하지 않고 동고동락하는 친구이다. 힘들 때 조용히 곁에 있으면서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정도 편안하게 말하는 사이이다. 예수님도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주는 것은 가장 큰 사랑이라고 하였다. 필요에 따라 함께 있다 힘들면 도망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배신하고 우정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 자신의 필요만을 위해 사람을 만나는 사람, 상황에 따라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 지혜로운 듯 해도 경계해야 할 사람이다. 그들은 기회주의자이다. 철새들처럼 얻어지는 것이 없으면 언제든 떠날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면 신중하게 분별해야 한다. 가까이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피해야 할 사람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교제를 하는가? 주님이 원하시는 삶은 어떤 삶인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 할 친구가 있는가? 언제나 변함없이 좋은 친구이신 예수님을 바라본다. 생명까지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사랑, 소중한 아들도 내어주신 사랑, 그 사랑을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그 사랑을 힘입어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이타적인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