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가난한 사람, 궁핍한 사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불편해한다. 불편함이 심하면 미워하기도 한다. 그들로 인해 내 권리가 침해받고 내 쓸 것을 다 사용하지 못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가난한 자를 미워한다. 미워하지 않는다면 반갑게 맞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부유한 자를 환영한다. 부자들 곁에는 친구도 많다. 넉넉한 사람이 무언가 제공하고 나누는 것이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살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22:2) 하나님은 부자만이 아니라 가난한 자도 지으셨다. 가난과 부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신8:18).
하나님이 우리들의 재물을 주관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들, 특별히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위해 나누라고 주신 것이다. 항상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기에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베풀기도 하시고 취하기도 하신다.
하나님의 경외하고 공경하는 삶은 추상적이지 않다. 실재적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주를 공경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사용하는 지혜를 배우자.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탐욕을 내려놓자. 이웃을 불편한 대상, 내 필요를 방해하는 존재로 생각하지 말자. 이웃은 내 존재가치를 살려주는 대상이다. 내가 지금 이 시간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를 알려주는 사람이다.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며 살 때 우리의 존재가치가 살아난다. 우리에게 주신 이웃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기길 소망한다. 가난한 사람을 하나님처럼 대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난한 자,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눔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